

육지 출신은 「인간의 힘」을 믿습니다……만. 육지 출신에게 사실이냐 묻는다면 거창한 표현이라며 손사래를 칠 한 치 앞이 자명하겠군요. 차라리 세속적인 표현을 쓰는 것이 낫겠어요. 「기술과 문명」같이 말입니다. 「나 자신」이라는 답도 나쁘지 않죠. 여하튼 이 믿음……. 혹은 의존을 명명한 특징은 바다에서 멀어져 내륙으로 갈수록 두드러집니다. 어려운 개념이 아니에요. 시골보다 도시가 두드러진다. 딱 그것이거든요. 한 번 들여다보죠. 시간이 없으니 핵심만, 간략하게.
심지 구역ㅤ은 국가 단위 행정 구역의 중심지입니다. 한 마디로 수도죠. 일반적으로 육지의 가운데에 있고, 한 국가의 경제와 산업, 정치를 책임지고……. 여하튼 한 국가로서는 중요한 구역입니다만 이 이야기에서만큼은 그리 중요한 무대가 아 닙 니 다. 자, 페이지를 넘겨요. ‘도시 구역’과 ‘경계 구역’에 주목해 보자고요.
도시 구역은 알고 있는 것과 크게 다르지 않을 겁니다. 심지 구역만큼은 아니지만 충분히 발전하고, 기술과 문명을 갖췄죠. 웬만한 문화생활과 오락 거리를 누리기에 부족함이 없습니다. 심지 구역이 단 하나라면, 그것에서 바다가 있는 방향으로 뻗어 나온 수십 개의 가지라고 할 수 있지요. 경계 구역은 익숙한 단어로 바꾸었을 때 곧바로 이해할 겁니다. 시골말이에요. 육지와 바다가 맞닿은 그 경계선의, 육지 쪽 구역. 기술과 문명이 없는 것은 아닙니다만, 그런 것들에 기대는 양상이 덜합니다. 누군가는 촌스럽다는 감상을 또 누군가는 고요하고 평화롭다는 감상을 남기죠.
세계착오적인 질문은 그만! 이 이야기에 해양 도시란 존재하지 않는답니다. 세상에, 해양 도시라니……. 너무나 낯선 단어의 조합이에요. 이 이야기에서 ‘바다’와 ‘도시’가 나란히 서는 일 따위 없습니다.
자, 기억하세요.
바다에서 멀어질수록 기술과 문명이 두드러진다.
특징이 이것이 전부냐 묻는다면, 그건 아닙니다. 따지자면 그것들은 ‘생활 양상’의 특징이죠. 사람을 나누는 잣대는 아니에요. 오롯이 사람만 마주하고서 그를 둘로 나눈 구역 중 육지에 밀어 넣고자 한다면, 「눈동자」의 색을 살펴보는 게 좋겠어요. 육지 출신은 행정 구역을 막론하고 푸른색을 제외한 다채로운 색의 눈동자를 가졌거든요. 육지에 전해 내려오는 오랜 전설에 따르면 육지에서 처음 눈에 담은 것의 색으로 물들었다고 하죠. 눈동자는 마음의 창이라는 말도 있잖아요? 처음 마주한 푸르지 않은 것에 온 마음이 빼앗겼던 것일지도 모릅니다.
그 외에도 육지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는 특징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만, 조금 미루도록 하죠. 어떠한 배움은 비교로부터 깨우치기도 하거든요.



바다 출신은 「자연의 힘」을 믿습니다. 사실 이건 조금 거창한 표현이죠. 신념이 있고, 거룩해 보이잖아요. 조금 더 정확히 표현해 보도록 하죠.
「해신의 힘」이라고 말입니다. 그들을 둘러싼 수많은 일희일비에서도 신을 찾으니, 「운명」이나 「숙명」이라는 것도 또 다른 답이 될 수 있겠죠. 여하튼 이러한 특징은 육지에서 멀어져 내해로 갈수록 두드러졌습니다. 그래요, 과거형이죠. 200년 전까지만 해도 바다는 육지와 같이 크게 세 개의 행정 구역으로 나뉘어졌었답니다.
몇 안 되게 남아있는 사료에 따르면ㅤ심해 구역과ㅤ 회랑 구역은 전통과 순리를 따르며 그 가치를 우선시하였다고 해요. 하지만 200여 년 전 발생한 바다의 소용돌이가 그곳으로 들어가는 모든 해류를 끊어냈습니다. 수면 위로는 배로 오갈 수 있지만 바다의 터전은 깊은 수심에 존재하니 소식이 요원할 수밖에요.
다행이라면 다행히도, 그 두 구역은 이야기에서 알아야 할 것이 아닙니다. ‘경계 구역’만 알아도 이 경계선상에 서기에 충분한 자격을 갖추는 것이죠.
경계 구역의 생활 양상은 육지의 경계 구역과 크게 다르지 않습니다. 바다에 존재하니 전통의 시골 모습을 주로 띠지만, 육지에 맞닿아 있으니 전자 제품을 사용하는 등 기술과 문명에 녹아들어 있기도 해요. 또, 육지와 맞닿아 있으니만큼 육지 사람들과 긴밀한 관계를 맺기도 한답니다. 협력이라든가, 알력 다툼이라든가.

아직도 그런 육지 사람의 관점이라니! 직시한 것만을 믿는 행위는 시기적절할 때에 신중함이 되죠. 하지만 동시에, 오만한 양날이 될 수 있음을 잊어선 안 됩니다. . 이 이야기에서 ‘신’과 ‘신화’는 명확하게 존재하거든요.
바다의 노인들은 이렇게 말합니다.
海 得三恩 陸失三恩 (해득삼은 육실삼은)
바다는 세 가지 은혜를 얻었으나, 육지는 세 가지 은혜를 잃었다.
여기서 세 가지 은혜는 ‘푸른색의 눈동자’, ‘태의’, ‘영혼의 불’을 뜻해요. 말 그대로 바다 사람만이 가졌고, 또 누릴 수 있죠.
푸른색의 눈동자에 이상의 설명은 필요하지 않을 겁니다. 바다를 투영한 듯한 푸른색의 아름다운 눈동자는 바다 사람만이 가진 전유물이니까요. 아아, 레이메이는 어째서 이토록 아름다운 눈동자를 버렸을까요!
태의는 바다 사람의 피부 위에 들러붙어 있는 아주아주 얇은 막입니다. 햇빛이 반사되면 무척 아름다운 무지개 색으로 빛난답니다. 물론, 아름다움만이 이 태의의 진가는 아닙니다. 태의를 태워버린 육지 사람은 바다에 풍덩 빠지는 순간 염분이 인체를 투과하고, 수압이 온 몸을 짓누르죠. 자그마한 해류에도 심박과 신체가 뻣뻣해집니다. 태의는 이 모든 것을 견뎌내게 한답니다. 아아, 레이메이는 어째서 이토록 강인한 태의를 버렸을까요!
영혼의 불은 바다 속에서도 꺼지지 않고 활활 타오르는 푸른 불입니다. 해신의 의지가 깃들었다고 전해지며, 이 바다의 사랑으로 인하여 차가운 바닷속에서도 따뜻한 음식을 배부르게 먹을 수 있습니다. 아아, 레이메이는 어째서 이토록 무한한 해신의 사랑을 버렸을까요!
그 외에도 바다 출신임을 짐작할 수 있는 특징이 몇 가지 더 있습니다만, 조금 미루도록 하죠. 어떠한 배움은 비교로부터 깨우치기도 하거든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