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이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육지 쪽의 경계 구역 마을입니다. 언덕이 많지만 낮고 넓게 펼쳐져 있어 경사를 오가는 데 큰 힘이 들지 않습니다. 또, 신식 건물보다는 전통 가옥이나 낮은 상가가 주를 이루죠. 때문에 기큐 산이나 전망대에 오르면 리쿠메이 마을이 한눈에 보인답니다. 시야 가득 마을을 그림 한 폭으로 담으면 주로 쓰인 색채는 노란색입니다. 마을 곳곳에 해바라기가 피어나 군집을 이루고 있거든요.
 본디 해바라기는 해안가에서 피어나기 쉽지 않습니다. 염분과 강한 바람은 꽃 한 송이 한 송이를 기어코 꺾어내려는 시련과 같거든요. 하지만 신기하게도 리쿠메이의 해바라기만큼은 그 모든 것에 굴하지 않고 피어나요. 마치, 처음 육지에 오른 인간 레이메이처럼 말이지요. 이러한 해바라기는 리쿠메이가 자랑하는 명물 중 하나랍니다.

  리쿠메이는 관광 산업으로 오가는 발길 끊이지 않은 적도 있었으나 해가 지날수록 인간이 가진 종교의 관심은 차츰 줄어들었습니다. 지금에 이르러서는 마을 사람들 대부분이 어업에 종사하는 고즈넉하고 지루한 마을이 되었죠. 하지만 보는 사람이 없다고 하여서 존재하였던 흔적이 사라지지는 않는 법입니다. 레이메이가 육지에 올라와 태의가 타들어 가는 고통 속에서도 한 걸음, 한 걸음 나아간 흔적을 그린 ‘레이메이 순례길’과 기큐 사찰까지 이어지는 좁은 수로에 둥지를 튼 무수한 해달 무리의 서식지 ‘해달 골목’은 오가지 않고, 그저 머무르는 인간의 손길 속에서 바래고 반질거리는 빛을 내고 있으니까요. 

  않은 느린 시간과 함께 나아가는 이 평화로운 마을에 아이를 제외하고는 불만 가진 어른일랑 없다지만, 그럼에도 단점을 꼽아야 한다면 문화와 교육 시설의 부족이 있겠군요. 의식주의 해결은 어렵지 않습니다만 도시가 가진 편리성에 비하면 현저히 뒤떨어집니다. 당장 중학교에 다니는 아이들이 진학해야 하는 고등학교도 인접 도시인 이토 시에 가야 있을 정도니 말이에요.






 뒤로는 기큐 산을, 앞으로는 언덕의 끝에 스이긴 거리를 둔 리쿠메이 유일의 중학교입니다. 내년이면 바다의 아이들이 폐교될 엔세키 중학교를 뒤로하고 함께할 공간이기도 하지요. 반도 하나가 더 늘어, 학년당 3개의 학급을 운영하게 되었답니다.
 치라이 중학교는 시골 마을의 학교이기에 도시보다는 덜하지만, 레이메이의 정신을 가르치는 것은 똑같아요. 포기하면 안 된다, 멈추지 말고, 나아가야 한다, 끝없는 자기 발전을 이룩해야 한다……. 는 등의 이야기 말이에요. 

 그렇다면 그 『레이메이』가 도대체 누구길래, 육지의 사람들은 그리도 입을 모아 자랑스럽다 말하는 것일까요? 걱정하지 말아요. 오래도록 의문만 가질 일은 없으니. 중학교에 입학하면 모두가 배우게 되는 이야기가 하나 있거든요. 누군가는 허무맹랑한 구전이라고 하고, 또 누군가는 창세신화라 일컫는 이야기지요. 























 카이 이 이야기의 무대가 되는 바다 쪽의 경계 구역 마을입니다. 아주 맑은 날이면 햇살 조각이 잔잔한 물결 아래까지 닿게 되는데, 그것이 바다를 투과한 육지 출신의 시선이 담을 수 있는 바다 마을의 유일한 순간이지요. 바다 출신은 육지 마을을 볼 수 있는데, 불공평하다는 감상이 들어도 세상은 어쩔 수가 없다는 말로 고개를 젓습니다. 그야, 수심 5m부터 이미 바다의 거센 저항을 받는 육지 출신으로서는 수심 20m 아래의 마을 입구까지 도착할 일이란 요원한걸요.
 여하튼 그 찰나로 훔친 바다 마을의 풍경은 첫 감상에 푸른색이라는 감탄을 내놓게 합니다. 다채로운 색들을 푸른 바다에 투과하여 바라보니 그런 것이 아니냐 묻는다면 응당 그 말도 맞겠지만, 푸른색이 많은 것도 분명한 사실입니다. 예로부터 푸른색은 해신과 바다의 무한한 사랑을 상징하는, 무척이나 신성한 색이었거든요. 특히, 다른 바다 마을도 아니고 꼬마님 두 명이 돌아갔다고 전해지는 태초의 바다이기까지 하잖아요? 이 꼬마님 두 명을 상징하는 것은 하얀색 소라고둥이었어요. 그러니 바다 마을의 건물은 그 신성함을 기리는 마음을 담아서 푸르거나 하얀 건물에 다시 푸르거나 하얀 조개와 따개비가 다닥다닥 달라붙어 있답니다. 

 카이 사람들은 바다의 품에서 영원을 살아갈 것이라 입을 모아 말했던 적도 있지만, 해가 지날수록 ‘인간’은 전통을 멀리하고, 편리한 문명을 추구하게 되었습니다. 바다에서도 작동하는 TV와 각종 전자 기기, 흥미로운 오락거리와 우아한 문화생활은 모두 육지의 기술과 발전이 낳은 결과물이지요. 그렇게 무수한 젊은이들이 바다를 떠나, 육지에 정착하고자 고향을 떠났답니다. 하지만 제자리를 지키는 이들은 어느 시대, 어느 땅인지를 불문하고 존재하기 마련입니다. 해신을 기리는 ‘보우에이토 신사’의 불은 꺼질 생각일랑 않고 인간에 의하여 돌보아지고 언젠가 돌아올 이들의 돌아올 곳이 되기 위하여 육지 마을과 바다 마을을 잇는 ‘카이보노우타 대교’의 손질을 멈추지 않았답니다. 

  같은 오늘, 아마도 같을 내일……. 평화롭고 조용한 일상을 영위하는 바다 마을의 사람들은 이따금 이런 생각을 합니다. 바다 마을에 사람들이 완전히 사라지는 날은 언제일까, 하고요. 노인은 언젠가 죽고, 젊은이들이 맡기고 간 아이는 학교를 가야만 하죠. 유일한 학교는 인구수가 준 탓에 결국 폐교 직전으로 몰리고 맙니다. 그렇게 된다면 바다의 아이들은 육지로 올라, 학교에 가야만 해요. 육지의 편리함을 알아버린 바다의 아이들이 다시 바다로 돌아올 생각을 하게 될까요?







 소레키 광장에서 해초의 숲으로 향하는 길목에 있는 카이카이 유일의 중학교였습니다. 왜 과거형이냐고요? 몇 년 전 초등학교에 이어 올해 엔세키 중학교의 폐교도 결정되었거든요. 좋아서 나서거나, 싫어서 머무르거나……. 그러한 선택이 불가능하게 된 이상, 엔세키 중학교는 곧 기록으로, 역사로, 과거로 넘어가게 될 겁니다. 
 곧 카이카이의 디트리터스가 될 엔세키 중학교입니다만, 담임 선생님은 마지막까지 해신과 가이린의 뜻을 강조하였어요. 받았던 사랑을 잊지 말라, 머물 줄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근간이 무엇인지 알고 있어야 한다……. 는 등의 이야기 말이에요. 조금 과한 걱정 같지만, 이해 못 할 것은 아닙니다. 바다의 아이들은 성인이 될 때까지 수면 위로 머리조차 내밀지 못하게 하였거든요. 어쩔 수 없다는 현재가 와버리기 전까지는 말입니다. 그러니 바다의 어른은 이 어린아이들의 ‘자립’을 어떻게 바라만 볼 수가 있겠어요?

 물론 듣는 바다 아이들로서는 귀에 딱지가 앉을 판입니다. 누군가는 바다를 잊을 리가 없다고 확신할 수도 있겠죠. 그야 당연한 게, 바다의 아이들은 태어날 적부터 해신과 창세의 증거를 두 눈으로 목도하였었거든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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